1. 서언(序言)
2. 「임오군란」의 성격규정
3. 「임오군란」의 전개과정
4. 「임오군란」의 사회적 의미
1) 하층민의 존재양식과 하급 군병의 성격
2) 저항 운동으로서의 임오군란의 구조
5. 「임오군란」의 결과와 영향분석
1) 임오군란과 도시 빈민들
2) 임오군란과 대원군
3) 임오군란과 민씨정권
6. 결어(結語)
1. 서언(序言)
1882년 6월 서울에서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은 1876년의 개항, 1884년의 갑신정변,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 등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동안의 연구가 임오군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사 부분에만 치중되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임오군란은 갑신정변, 을미사변과 함께 19세기말 조선에서 일어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하나이면서 후자의 두 사건과 연계된 최초의 사건으로 한국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임오군란은 도시 하층민의 대규모 저항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19세기 전시기에 걸쳐 끊임없이 계속된 농민 저항운동, 농민 전쟁과 함께 봉건 사회 해체기의 사회적 모순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봉건적 사회구조의 해체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임오군란」이 도시하층민의 저항운동으로 보는 사회적 의미와 함께 임오군란으로 인해 국내․외의 정치적 세력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둘이 균형을 이루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종합적인 관찰이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