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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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무정
이 광 수

우리의 근대문학사에 무수한 작가가 있었지만 춘원 이광수(1892~) 만큼 많은 작품(장편소설 33편, 단편소설 38편, 시와 시조 360편, 기타)을 남기고 독자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가는 아직까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점은 일찍이 김동인도 지적한 바 있다.

조선의 소설과 가운데서 그 지식이 풍부함과 그 경험의 광범함과 교양이 많음과 정력이 절륜함과 필재(筆才)의 원만함이 춘원이 따를 자 없다.

이러한 김동인의 지적은 정당한 평가임에 틀림없다.
춘원은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학원 중등부를 졸업하고, 일시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원생활을 하다가 다시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철학부를 다니면서 한국 근대 최초의 장편소설 [無情(1917)]을 <매일신보>에 연재하여 세인을 놀라게 했다. 이후 그는 [개척자 (1917)], [흙 (1933)], [사랑 (1938)] 등 무수한 작품을 통하여 민족 의식을 일깨워 주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춘원은 1939년 일본제국주의의 강압에 굴복하여 창씨개명을 하게 됨으로 민족지도자의 명예를 훼절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반민특위에 의하여 재판을 받았고, 다시 6. 25동란으로 납북되었다.

[무정]의 소설사적 위치와 의의

한국 근대소설의 첫 장을 장식한 무정은 많은 비평가에 의하여 부정적 평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광수의 문학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대 소설의 기초를 확립시켰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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