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雲英傳)
수성궁(壽成宮)1)1) 수성궁(壽成宮): 원래 문종(文宗)의 후궁이 거처하던 별궁이었다.
은 안평대군(安平大君)2)2) 안평대군(安平大君): 세종(世宗)의 셋째 아들 이용(李瑢, 1418~1453)을 말한다.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으로 강화(江華)에 유배되었다가 교동(喬洞)으로 옮겨져 죽음을 당했다. 시문(詩文)에 뛰어났고 당대의 명필이었으며 그림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의 옛 집으로, 서울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아래에 있다. 이곳은 산천이 수려하며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을 하고 있다. 그 남쪽에 사직(社稷)이 있고 동쪽에는 경복궁(景福宮)이 있다. 인왕산의 한 줄기가 굽이굽이 휘돌아내려오다 수성궁 앞에 이르러 우뚝 일어선다. 비록 높고 험준하지는 않으나 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큰 길에 늘어선 시장이며 성 가득 으리번쩍한 집들이 바둑판의 바둑돌 모양 하늘의 별들 모양 펼쳐져 있어 역력히 가리킬 수 있고 베틀에다 실을 가로세로로 짜 놓은 것처럼 구획이 뚜렷하였다. 동쪽으로는 아득히 궁궐이 바라보여 두 갈래 길3)3) 두 갈래 길: 複道. “윗길은 임금, 아랫길은 백성이 다녔음-이상구”()
이 하늘을 가로지르고(複道橫空) 구름 안개가 쌓여 내는 비취빛이 아침저녁으로 자태를 드러내니 참으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 할 만하다. 당대의 술꾼이며 활쏘기 즐기는 이들, 노래하고 피리부는 아이들, 시인이며 서화가들이 꽃피는 봄날이건 단풍지는 가을날이건 날마다 여기서 노닐어 자연을 노래하며 즐기다가 집에 돌아갈 것도 잊는다.
청파(靑坡)4)4) 청파(靑坡): 지금의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일대.
에 사는 선비 유영(柳泳)이 이곳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을 싫도록 듣고는 한 번 여기서 노닐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옷이 남루하고 얼굴빛도 꾀죄죄하여 놀러온 길손들에게 비웃음당할 것이 뻔하기에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려다가도 머뭇머뭇한 지 오래였다.
만력(萬曆)5)5) 만력(萬曆): 명나라 신종(神宗)의 연호. 1573~16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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