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序論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1921년 3월, 미국 大統領직에서 물러났다.退任시 윌슨은 가슴속에 쓰라린 여운을 안은, 지치고 상처받은 정치인이었다.그의 백악관 시절 동안 미국의 對外關係는 급속도의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윌슨 行政府의 행위들, 윌슨 자신의 동기, 그리고 그가 빚어 낸 變化의 結果들은 1913년에서 192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美國外交政策의 해석을 둘러싼 論爭의 源泉이었다.그 이후 윌슨 시대를 둘러싼 역사학자들간의 논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아마도 이 논쟁에서 가장 주목할 측면은 그것의 범위와 관련된 것으로서 그 동안 硏究者들은 아주 기본적인 사항에서 마저도 합의를 이루어내는 데 실패해 왔다.찰스 세이무어(Charles Seymour), 찰스 탠실(Charles Tansill), 토마스 베일리(Thomas Bailey),조지 케넌(George Kennen), 그리고 그 밖의 제 1세대 윌슨 연구자들은 상당량의 연구를 양산해 냈으나, 합의점을 찾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이들이 얘기하는 윌슨은 서로 다른 사람인 것 같기 조차하였다. 즉 윌슨은 미국 중립주의의 곤정한 수호자, 경제적으로 연합국과 금융자본가인 모건(Morgan)가문에 위해 끌려간 얼간이, 세계 평화에 있어 순교자적인 예언자, 권력의 현실적 측면에 무지하고 이를 경멸했던 순진한 이상주의자 등 가지각색으로 그려저 왔던 것이다.
이런 역사해석에 있어서의 혼란은 1951년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로버트 오스굿(Robert Osgood)은 1953년, 그의 저서에서 윌슨이 세력균형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상주의자였다고 논하였다. 2년 후 에드워드 뷰리그(Edward Buehrig)의 연구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윌슨이 그 정책결정을 내림에 있어 세력균형의 유지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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