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나르 프리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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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그나르 프리시에 대하여
라그나르 프리시
Ragnar Frisch, 1895~1973

생애 및 개관

프리시는 1895년에 노르웨이에서 출생하였으며, 1931년 오슬로대학 교수가 된 후 1930 이 대학의 사회경제연구소의 책임자로 일하였다. 여기서 그는 생산이론, 국민소득계정, 경제계획, 동태이론, 수학적 프로그래밍 등 여러분야에 걸쳐 이론적인 연구를 리드하였다. 이 기간 중 프리시는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고 이들이 한 학파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앞에서 지적했듯이 계량경제학회를 창설하였으며 Econometrica의 편집장을 장기간(1933-55) 역임하였다. 2차대전 이후에는 수많은 대학의 초빙교수를 역임하였고 여러 후진국의 경제발전계획의 고문을 지내기도 하였다.프리시의 업적은 수많은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에 개괄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업적 중 가장 두르러진 특징은 경제학을 정확하고 수량적인 과학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대변된다. 프리시에 대한 평가는 경제학의 계량화, 경제정책 및 계획의 이론, 경제동학이라는 세 가지 업적에 대한 고찰로 대신할 수 있다.

학문적 업적

경제학을 정확하고 계량적인 과학으로 만들고자 하는프리시의 노력은 '이론'과 '측정'을 전체의 부분으로 함께 다루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잘 나타나 있다.

프리시는 이론의 추상적인 공식화와 명료화에 만족하지 않았다. 1926년에 출판된 <순수경제이론이 문제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그는 이론을 경험적 관찰에 연결시켜 소비자효용구조의 여러 특징을 측정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작업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다른 노문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연구들은 노쟁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효용의 측정가능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1959년에 발표된 프리시의 <다부문모델에서의 직접,교차 수요탄력성을 계산하는 완전한 체계>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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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