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부의 인디언 부족들은 유럽인들에게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인디언들이 새로운 기술에의 접근과 백인들과의 교역(칼, 도끼, 무기, 요리도구, 낚시바늘 그리고 기타 많은 물건 등)의 혜택을 입기도 했지만 초기의 백인 정착자들이 가지고 온 질병과 토지 소유욕이 인디언들의 오랜 생활방식에 심각한 난제를 안겨주었다.
펜실베이니아 식민지가 생기고 나서 처음 반세기 동안에는 좋은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좌절과 작은 충돌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그 결과는 거의 틀림없이 인디언의 패배였고, 그들은 더 많은 땅을 잃게 되었다.
주요한 인디언의 봉기의 첫 번째 봉기는 1622년 버지니아에서 일어났다. 이 봉기에서 약 347명의 백인이 살해되었고 1637년에는 인디언 부족들이 백인의 코네티커트 지역 정착을 막으려하자 '피쿼트' 전쟁이 일어났다.
또한 1675년에 당초 1621년 '필그림'(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프리마드에 상륙한 식민지 건설단)들과 평화조약을 맺은 추장의 아들인 필립은 유럽인들이 더 이상 자기들의 땅을 침식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뉴잉글랜드 남부의 인디언 부족들을 뭉치게 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필립은 죽고, 많은 인디언들이 노예로 붙잡혀 갔다.
정착민들이 계속 동부의 식민지 변경의 삼림지대로 이동해옴에 따라 인디언들의 삶이 피해를 입게 되었고 차츰 많은 짐승이 사냥으로 없어지고, 그리하여 인디언들은 굶주리느냐 전쟁을 하느냐, 아니면 서쪽으로 이동을 하여, 거기 사는 다른 부족들과 충돌을 하느냐의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인디안 선교의 시작은 로마카톨릭에서 먼저 선교사역을 시작하였으나 그들은 식민주의적 선교를 함에 따라 선교사가 사역하는 인디언 지역들을 강대국에서 식민지화하는 식민지 인디언 선교를 하자 인디언들은 기독교에 대항하고 선교사를 저항하는 선교의 역효과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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