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자치 운영기구인 서원은 성립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하였으나 기능과 성격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서원이 관인양성을 위한 준비기구적 성격이 띄는데 비해 우리의 서원은 사림의 장수처(藏修處)이면서 동시에 향촌사림의 취회소(聚會所)로서 정치적․사회적 기구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서원이 사림의 향촌사회에서의 거점적 역할, 즉 조선 사회사 중심의 평가가 그 주를 이룬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원의 진정한 목적은 교육적인 측면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서원의 성립과 배경 그리고 서원의 교육내용, 기능 등을 파악함으로서 조선시대의 서원교육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2. 서원의 성립 및 배경
서원설립의 주체는 16세기 이후 조선왕조의 정치사를 주도하였던 사림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사림파는 훈구파의 부국강병책을 비판하고 유향소를 비롯한 향촌자치제의 실시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무오(戊午)․갑자사화(甲子士禍)를 거치면서 일대 타격을 받은 사림세력은 향촌사회로 내려가 착실한 재지적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경상도 풍기군(豊基郡)에서 최초의 서원이 출현하였다. 즉 서원의 출현은 중앙집권정책과 이에 기초한 관료세력과의 계속되는 마찰을 대안하여 향촌사회로 구심점의 전환 역할을 하였으며 교육기관으로서의 교화(敎化)를 표방함으로써 정치적 반대세력으로부터의 견제를 그만큼 덜 받을 수 있는 기구였다.1)1) 이수환, 『한국사』28, 국사편찬위원회, 1996, pp27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