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치 발전의 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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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치 발전의 25년
불기 2475~2500년(서기 1932~1957년)의 태국 정치 발전의 25년
불기2475년 6월24일에 군 공무원과 민간 공무원으로 이끌어지는 혁명이 절대 군주 통치제도를 타도하고, 헌법 하에 입헌군주제를 세웠다. 라마 7세는 불기 2475년(서기 1932년) 12월 10일에 헌법을 하사했다. 이외에도 불기 2476년(서기 1933년)에는 태국 역사상 최초의 총 선거가 있었다. 혁명 이후에 아주 중요한 3 사건이 있는데 첫 번째 사건은 2475년 혁명의 인민당 대표의 한사람인 쁘리디 파놈용 박사에 의한 국가 경제 계획 수립이다. 이 경제 계획은 보수주의파에 의해 공산주의 계획으로 불려졌고 쁘리디는 사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잠시 태국에서 떠나야만 했다. 두 번째 사건은 버워라뎃 왕자에 의한 반혁명이다. 그러나 이 혁명은 현재 던므엉 비행장에서 아주 가까운 지역일대에서 충돌발생 이후에 실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식통치제도를 일으켜 이끌려는 왕족을 제거하였다. 세 번째 사건은 불기 2478년(서기 1935년)3월 유럽순방중인 라마 7세가 영국에서 양위를 선언하였다. 그래서 왕위는 아난타마히돈왕(라마8세)으로 계승되었다. 왕이 아직 어리고 공부 중이었기 때문에 왕을 대신하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왕 대신 3명으로 구성된 섭정당을 지명하였다.
태국의 첫 번째 수상은 전 대법원장인 마노빠껀니띠타다였다. 그는 수상에 약 1년동안 재직했고 구식통치제도를 복귀하려는 두려움이 있는 중에 파혼경이 혁명을 일으켜 대신해서 수상이 되었다. 본래의 통치제도를 되돌리려는 두려움은 상상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두세달 후에 버워라뎃왕자가 코랏으로부터 군대를 충돌시켰으나 앞에서 언급한대로 촉망되는 청년장교와 불기 2475년(서기 1932년) 혁명당 대표중의 한 명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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