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장(戰場)으로서의 역사
추상같았던 유신정권이 사늘한 총성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뒤, 12‧12의 음침한 눈초리가 살기를 번뜩이며 계엄령의 깃발을 움켜지고 있었던 그 해 겨울은 희망과 의심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긴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난 사람들에게 어느덧 찾아 온 새봄의 햇살은 의심의 중압감 속에서보다는 희망의 생동감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라 재촉하고 있었다. 3월에는 아크로폴리스의 광장이 술렁거렸고, 4월에는 사북의 탄광이 요동쳤다. 5월의 서울역 광장은 10만의 대학생들이 써내려 가는 1980년대의 서막이려 하였다. 숨을 죽이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5월은 해방이었다. 이들 모두는 이윽고 도래한 봄의 역사적 의미를 이제 막 이해하려 하였다. 하지만 80년의 봄은 더 큰 잔인함을 내포한 순간적 달콤함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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