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歷史家와 詩人
고대의 위대한 역사가들은 자료에 구애되지 않고 개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언급할 때, 가령 영웅이나 시인의 연설을 취급할 경우에 서사시적인 것에 가까워진다. 이것은 소재의 취급방법 전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서술에는 통일성이 있다. 그리고 외면적인 진리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니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면적인 진리만큼은 지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시가 역사화와 대응되는 반면에, 역사는 초상화와 비교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더라도 초상화는 개인의 이상이어야 한다는 빙켈만(1717 1768, 독일의 예술 비평가-譯註)의 요청을 고대의 역사가들도 지켰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개개의 사물을 그 속에 표현되는 인류의 이념을 부각시켜 묘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최근의 역사가들이 묘사하는 것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거의 모두가 단지 쓰레기통이나 잡동사니가 들어 있는 곳간이며, 고작해야 군주나 국가의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류를 모든 현상의 발전을 통하여 완전히 동일한 내면적 본질, 즉 인류의 이념에 입각하여 인식하려고 하는 자에게는 역사가가 성취한 것보다 위대하고 불멸한 시인의 노작이 더욱 귀중한, 그리고 분명한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그 이유는, 가장 뛰어난 역사가라 할지라도 시인으로서는 제 1인자가 아니며 또한 시인답게 자유로운 필치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념에서 보면 시인과 역사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비유의 말로써도 설명할 수 있다. 수학적인 지식이 전혀 없이 다만 자료에만 의존하여 연구하는 역사가는 우연히 주어진 도형의 관계를 살펴볼 때, 다만 자료를 측정하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사람과 흡사하다. 이러한 경험에 의거하여 얻은 결과에는, 본래 주어진 도형에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이 그대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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