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칼럼
[아버지] 2002년 9월호
가까이 있기에 너무 가까운 당신 (마태복은 16:13-17)
아버지와 아들, 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관계가 어떤 때는 당사자들의 삶과 가정을 어눌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둘 다 가슴으로 말하면 해결될 문제가 감정으로 말하다 관계파산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입는 것은 마음의 깊은 상처일 때가 많습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자조하고 넘어가기에는 아버지 됨의 무게가 크기에 그럴 수도 없는 게 아버지들의 고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 대립을 극렬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아마 1862년 발표된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의 장편소설 [아버지와 아들]일 것입니다. 젊은 의학도인 바자로프는 당시 기성세대를 형상화한 지식인이며 자유주의자인 아버지 파벨 키르사노프의 가치관을 전면 부정합니다. 허무주의로 대별되는 바자로프의 사상은 과학적으로 실증할 수 없는 예술, 철학, 종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부자대립은 역사상 항상 있어 왔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오늘날의 아버지와 자녀들이 서있을 뿐입니다.
젊은이 세대를 가상공간을 무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인터넷 세대라 하여 N세대라 하기도 하고, 뜻대로 행동함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 X세대, 튀는 패션에 쇼핑을 즐기는 새 천년시대의 주역이 될 세대라 하여 Y세대라고도 부릅니다. 월드컵과 함께 R세대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합니다. ‘붉다’는 것에 콤플렉스를 앓고 있던 기성세대를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몰려나가 한 방 먹여 기세도 당당했던 젊은이들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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