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 공주, 설씨니, 도미처. 이들의 공통점은 삼국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이라는 점. 또 하나는 불합리한 세계의 모순 앞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며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한 인물들이라는 점. 그리고 「삼국사기」라는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가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점.
평강 공주는 국왕의 식언에 항변하며 궁궐을 뛰쳐나왔고, 도미처는 국왕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남편에 대한 지조를 지켰고, 설씨녀는 약혼자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명을 어겼다.
우리는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신의와 정절을 중시하였던 삼국시대의 사회 풍조를 짐작할 수도 있으며 혹은 남녀간의 신의를 지키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주체적 여성상(인간상)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실 「삼국사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관심을 더 끄는 것은 어느 왕이 몇 년에 즉위했고, 어느 해에 누구를 어떤 관직에 임명하였는가 보다도 그 시대의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엮어 내는 구체적 삶의 모습들이다. 그리고 그들 각각의 삶을 재구성하고, 그를 통해 당대의 사회와 생활상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신라 때의 대문장가인 강수가 부모의 허락없이 신분이 미천한 대장장이집 딸과 사랑을 하였다는 이야기나 김유신의 아버지가 길을 가다가 한 처녀와 눈에 맞아 중매도 없이 야합을 하였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옛날 시대의 남녀 교제하면 흔히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여 엄격하게 통제되고 금기시만 되었다고 획일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물론 대부분의 결혼에서 부모나 집안의 의사가 일차적으로 고려되었겠지만,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청춘남녀의 만남과 사랑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또한 평강공주, 설씨녀, 도미처의 이야기나 신라 사람들이 여왕을 세 명씩이나 두었던 것 등에서 우리는 삼국 시대 여성의 활동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활발하였음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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