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여는말
17세기 말 내지 18세기 초의 프랑스에서는 자유사상이 존중되었다. 이 시대의 경향은 물질주의를 낳아 그 대표자들은 종래의 사상과 학설을 무섭게 비판했고, 종교를 비웃으며, 정치를 비방하는 등 전 사회생활을 공격했다. 정치는 문란했고 불법의 壓制는 정점에 달했으며, 승려들은 몸시 타락하여 그 본분을 잃었으며, 귀족들은 사치에 흘러 부도덕한 행위를 예사로 자행했다. 그와 같은 사회였기 때문에 가정생활은 불건전했고, 교육 또한 현저하게 쇠퇴되어 있었다.
Rousseau는 그러한 시대에 태어나, 당시 사회의 악의 근원을 간파하고, 자연에 돌아가 자연의 길에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구제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의 뜻을 제창했다. 그런 뜻에서 루소를 계몽사조의 대표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하는 데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는 계몽사조의 혁신적 요소를 몸에 지니고 당시의 시대적 폐단을 통렬하게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건설적인 법이론과 사회이상론을 제창함으로써 프랑스혁명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또한 계몽사조의 이지적 및 합리적 성격에 반항하여 문예사상의 Romanticism의 선구가 되어 主情主義의 대표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