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성사에서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서양의 고유한 정신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서양의 고대, 특히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되돌아가야 한다. 니체와 하이데거를 위시한 현대의 서구 사상가들은 고대에로의 복귀를 외치며, 그 곳을 향한 그들의 사유의 항해를 시작했다. 나아가 그들은 무수한 저작과 강의에서 한결같이 서구적 사유 전통의 그리스적 기원을 강조한다. 스넬은 {정신의 발견} 서문 첫머리에서 유럽적 사유는 그리스 인에게서 시작되고, 그 이후 그것은 일반적으로 사유의 유일한 형식으로 여겨져왔다. 이 그리스적 사유 형식이 서구인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공언한다.
물론 서구 사유의 그리스적 기원은 통상 철학교과서가 제시하듯 특정한 몇몇 철학자들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현대 서양인들에게 그들이 위대한 사상적 지주이듯이, 고대 서양인들에게도 그들의 선조가 뿌리내린 사상적 전통이 있으며, 고대 그리스 사상 역시 이 전통의 맥을 이어받고 그 토양에서 자라났다. 심지어 동양이나 서양의 고대가 공히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근동이라는 동일한 어머니에서 태어났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고대 그리스․로마 사상의 배후에 출렁이는 거대한 사상적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옛날옛적 뮈케네의 작은 섬이 에게헤와 그리스 북쪽 트라키아 지방에까지 일으킨 거대한 문화적 돌풍처럼, 사상의 대양(大洋)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정신은 고전기와 헬레니즘기에 이르러 유럽 전역과 근동 및 인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다. 신화학자 조지 켐벨은 동방에서 유럽으로, 다시 유럽에서 동방으로 주기적으로 나아간 이 박진적인 문화적 흐름을 '위대한 역전'(Great Reversal)으로 표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