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전반을 self control하는 tough하고 sexy한 여성의 taste’.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무분별한 외래어 혹은 외국어 사용 풍조는 날로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는 외국어 단어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이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요건이며 혹은 자기를 과시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반영해 주는 현상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래어 혹은 외국어가 소중한 우리말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우리글은 바르게 못 써도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영어는 글자 한 자만 잘못 써도 수치스러운 일로 아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1)1) 이오덕, 우리말 바로쓰기, 한길사, 1994, p.217.
다음의 인용글은 우리말 속에 스며든 외래어에 대하여 풍자한 글이다.
한 베이비가 태어나면 캐시미롱 포대기 속에서 플라스틱 젖꼭지를 빨며 죠니 크랙카와 스마일 쿠키를 먹고 코카콜라나 펩시를 마시며 자라난다. 프로권투의타이틀 매치를 관전하며 피 흘리는 KO 승에 부라보를 외친다. 더 자라면 팝송이나 재즈뮤직에 넋을 잃고 아디다스 티셔츠에 고고디스코를 추며 아이템풀 엣센스 국어사전 콘사이스로 공부하여 대학입시를 보면 커트라인에 들어야 패스한다. 맨션 아파트에서 나와 스쿨버스를 타고 캠퍼스에 가면 채플을 보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총장 리셉션에 가서 커피 한 잔에 슈가를 세 스푼 넣어 마신다. (‘동아일보’ 87.10.9. 이정복씨의 글2)2) 이오덕, 우리말 바로쓰기 제1권, p.21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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