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반생(半生)에 대한 보고를 하려고 하니 다른 보고를 쓸 때보다 훨씬 할말이 많은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내가 종사하고 있는 직업, 즉 내가 탐구하고 있는 학문연구는 다른 직업처럼 우연히 하게 된 것이 아니고 남들이 신중히 고려하여 나에게 맡긴 것도 아니며, 내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은 평탄하고 즐거운 것과는 거리가 멀 뿐더러 곳곳에 장애물이 놓여 있는 험한 길이며, 처음에는 나도 어떻게 발길을 디뎌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내가 이 세상에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1788년 2월 22일이었다. 부친은 하인리히 프로리스 쇼펜하우어이다. 모친은 오늘날에도 건재하며 일련의 저작(著作)으로 유명하지만, 처녀시절에는 요한나 헨리에테 트로지나라고 불렸다. 탄생 당시의 사정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던들, 나는 이미 영국인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친은 해산달이 임박해서 비로소 영국을 떠나 고국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존경해 마지않는 나의 부친은 부유한 상인으로 폴란드 왕국의 궁정 고문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부친은 엄격하고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한편 품행이 방정하고 정의감이 강하여 남에 대한 신의를 반드시 지키면서도 장사에 대해서는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내가 부친의 신세를 얼마나 졌는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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