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을 쓴 조정래를 말하자면 우리나라 분단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80년대에 써낸 <태백산맥>과 연달아 90년대에 써낸 <아리랑>이 모두 밀리언셀러에 오른 기록을 세웠다. '순수문학'에서 이만한 기록이 세워진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조정래에 의하면, 그의 문학을 일군 지렛대는 '가난'과 '분단'이다. 초등학교 시절, 눈비 오면 머슴이 업고 오던 도련님들과 한 반에서 공부를 할 때 저절로 '저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문학 청년 시절 거주지인 서울 성북동 달동네의 남루한 이웃들을 보면서는, 문학이 이들을 외면하고서 과연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다. 6․25 때 미군이 군홧발로 안방까지 치고 들어오는 광경을 직접 목격한 기억도 두고 두고 살아남아, 분단 문제가 조정래 문학의 화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 진학한 조정래는 문학이 갖고 있는 숭고한 정신에 무릎꿇다시피 경배하면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시공을 초월하는 위대한 작품을 쓰리라 기원했다. 6․3세대에 속하는 그는 동국대 총학생회 학예부장을 지내며 거의 모든 격문을 도맡아 쓰다시피 했으며, 두 차례의 신춘문예 낙방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한 문학 청년이었다.
제대와 등단 그리고 유신시절 3년 동안 중경고에서 교사생활을 했으나그의 문학성향을 알아본 군 장성 출신의 교장은 그를 보고 당장 나가라고 했다. 그 뒤로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1983년 9월 「현대문학」에 <태백산맥>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의 문학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등장인물이 486명에 이르고, 쌓아 놓으면 자기 키보다 10cm가 높은 원고지 1만6천5백매 분량의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동안, 조정래가 양복 입고 외출한 것은 1년에 한두번에 불과했다. 전화도 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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