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의 감상문을 쓰기 위해 여러 편의 영화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재수의 난>, <영원한 제국>,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의 후보작 중에서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을 선택한 이유는 감독의 영화 경력이 한국 근대 영화사를 이야기 해주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90년 <장군의 아들>을 찍은 이후부터 <개벽>,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창>, 그리고 최근의 <취화선>까지 그의 영화는 끊임없이 한국의 근대 역사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의 구체적인 역사의 기억과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대의 흐름에 휩싸여 종종 망신창이 되어버리는 과정 속의 한국인의 삶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누구보다 대중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 <태백산맥>은 1948년 여순 사건부터 6.25 전쟁 후 9.28 수복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격동기를 힘겹게 살아간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을 힘있게 그려 나간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총 10권으로 쓰여진 소설 ‘태백산맥’은 최상의 문학적 평가와 최고의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머쥔, 현대 한국 문학의 신화와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태백산맥을 온전히 영화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에 그것을 영화화할 수 있다면, 시간적 전개만으로도 십여 편의 길이를 갖는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태백산맥>은 소설 ‘태백산맥’의 수많은 인간군상을 치밀하게 드러내는 부분을 많이 제외하였다는 것뿐만 아니라, 소설이 좌익과 우익의 이념적인 대립을 중심에 놓고 기술하고 있는 반면, 영화는 세 명의 중심인물을 놓고, 그들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시대를 재편하고 있다. 소설 속의 역사적 의미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영화라는 특수한 매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영화의 미흡함에 대한 많은 지적들이 있지만, 한국 영화사의 측면에서 영화<태백산맥>이 그려낸 역사의 현장은 충분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