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학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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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학의 발달입니다.
고대의 해양학




적조를 일으키는 와편포 조류. 해양오염 등으로 이들이 번식하기에 적당한 조건이 되면 자연 발생한다.
바다와 관련된 모든 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해양학(Oceanography)이라고 부른다. 바다에 대한 연구는 인류가 진화한 후, 인류 문명이 해안에 많이 위치하게 됨에 따라 자연히 발생했을 것이다. 물고기가 언제 어디서 많이 잡히는가를 살핀다든지, 달의 형태가 변하는 것으로부터 조석 주기를 예측한다든지 등의 것들이 바다에 대한 연구의 시초였을지 모른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 속에서 홍해의 물 빛깔이 핏빛으로 변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최근의 생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단세포 식물의 일종인 와편모 조류(그림)의 대량 번식으로 인한 적조(赤潮, red tide)의 결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학문이 그러하듯이 초기의 해양학 역시 단편적이고 매우 국지적이었을 것이다.

바다를 관찰한 가장 오래된 기록을 살펴보면, B.C. 3,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바다의 지도를 만들었는데 바다는 그 때까지 알려진 모든 육지를 둘러싼 거대한 물의 고리(ring)를 나타내고 있었다. B.C. 8 세기경에는 페니키아인들이 바다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지중해의 해류를 꾸준히 연구했다. 보통 해양학의 근원을 그리스에서 찾기도 하는데 지중해의 문명을 주도한 그리스인들이 바다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수집했기 때문이다. B.C. 4세기경에 파테아스(Patheas)는 간만 현상이 달에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도 해양 생물학에 공헌했는데 그는 에게해 (Aegean Sea)에 서식하는 180여 종의 동물과 그 외에 100여 종의 어류 및 60여 종의 무척추 동물에 대해 기재하였다.

B.C. 1세기경에 포세이도너스(Poseidonous) 역시 간만 현상을 달과 관련시켰다. 그는 또한 지구 둘레를 매우 과소 평가했는데 이 크기는 A.D. 2세기경에 톨레미(Ptolemy)의 저서를 통해 후세 유럽 문명에 전해졌다. 그 외에 B.C. 1세기 후반까지 몇몇 해양의 수심을 측정한 기록은 있으나 측정 방법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그 후 로마인들은 통치 지역으로 항해하기 위하여 지중해를 누비고 다녔으나 바다 자체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멸망 후, 많은 그리스의 지식들이 애석하게도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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