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 38선 확정에 관한 여러 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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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 38선 확정에 관한 여러 학설
역사학 - 38선 학설에 관해서

목 차

/들어가며...
/국제상황...
/국내상황...
/이런저런 생각들...
/나가며...
/참고문헌...

/들어가며...
1945년 8월에 한반도에 진주한 미․소 양군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분담하기 위해 북위 38도선에 설정한 임시분사 분계선이다. 38선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다시 휴전과 분단 고착화의 산파역을 맡게 되었고, 종전 후 열강들의 실리추구(實利追求)를 위한 지도선상 위의 전략선이었다. 당시 국내 정치 및 건준(建準)세력들 또한 분단의 책임을 회피할 순 없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승전국인 미. 소 또는 일본-가장 구체적 분단의 이유를 제공했던 세력들이라는 점에서-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44년 중반을 넘어서면서 연합국들은 일본의 패망을 예상하고 연합국의 수뇌들이 모여 종전 후 일본(또는 독일)의 점령지 처리에 대하여 상의하고 있었다. 이중 “카이로 회담”에서 조선에 대한 첫 언급이 있었으나, 소련의 참전 직전에 있었던 “얄타 회담”이후 조선에 대한 처리 문제는 공식적인 문서 한 장 없이 ‘신탁통치’정도로의 구두 합의로 회의를 마쳤고 일본의 패망과 함께 38선은 확정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38선의 성립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38선이 성립된 건 일본의 전쟁패망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커다란 의문이 든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나라가 나뉘게 되는 것은 그 나라가 직접적인 전쟁의 원인이 되었을 경우에 많이 일어나는 결론이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35년간이나 일본의 식민상태에 있었는데 어째서 우리 나라에 38선이 그어지게 되었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38선이 아마도 우리가 역사책에서 당연하게 배우는 위와 같은 논리만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롭게 역사를 돌아보고자 했다.

/국제상황...
5월 7일-독일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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