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조사] 김구와 이승만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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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소개
김구는 1876년 8월 29일(음력 7월 11일)에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基洞)에서 안동 김씨 김순영(金淳永, 당 24세), 현풍곽씨 곽양식(郭陽植)의 딸 곽낙원(당 17세)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 때 그의 집안은 매우 어려웠는데, 그 것은 그의 선조 중에 인조반정 공신이었다가 후에 조선이 명의의 연호를 쓰고 있다고 청나라에 밀고한 혐의로 처형당한 김자점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의 집안은 멸문의 화를 당하고 그 일부가 해주로 내려와 은거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향호들의 압박과 수모를 받아야만 했다.
그 후 그는 정식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였으며, 항상 우등하였다고 한다. 1890년 15세에 과거에 응시했지만 실패하였고, 1892년에도 우리나라 최후의 과거로 임시시행 되었던 경과를 보기 위해 해주로 갔으나 당시의 부패한 현실에 실망하고 다시 낙향하였다.
김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통일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이었으며, 1926년 12월부터 1927년까지, 1940년 3월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제6대, 12대, 13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아호는 창암(昌巖)이고, 호는 백범(白凡)이다. 호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 19세 때 이름을 창수(昌洙)로 바꾸었다가, 37세(1912년)에 거북 구(龜)였던 이름을 아홉 구(九)로 바꾸었다.
이승만 소개
이승만은 1875년 4월 18일(음력 3월 26일) 황해도 평산(平山)에서 아버지 이경선(李敬善, 1839년 ~ 1912년), 어머니 김해 김씨(金海金氏, 1833년 ~ 1896년) 사이에 3남 2녀중 막내로 출생하였으나, 손위의 두 형이 그의 출생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장남 역할을 대신하였고 사실상의 6대 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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