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1786-1856)는 서예가, 문예가, 고증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논하려는(엄밀히 말해서 살펴보려는) 김정희의 면모는 이러한 서예가, 문예가가 아니라, 조선후기 유학의 한 양상인 실학파의 학자로서의 측면이다. 따라서 그에 관한 잡다한() 얘기는 그의 생애와 함께 간략히 다루기로 하고 주로 그의 실학사상가로서의 사상을 다루겠다.
실학이라는 말은 쓸모있는 학문 을 연구하여 사물을 통하여 진리를 탐구 한다는 뜻의 준말이다. 실학사상은 17세기 중엽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개화사상이 발생하게 된 19세기 중엽까지 하나의 시대적 사조로서 존재하였다. 조선후기 실학파의 성립 배경은 임진,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드러나는 사회지도층의 공리공론에 치우친 도학파에 대한 반발이라는 사회적 요인과, 17세기 이후 전래된 양명학, 서학, 고증학에 대한 긍정적 수용이라는 학문적 요인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잠깐 김정희와 연관이 깊은 고증학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고증학은 경전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경전의 본 뜻을 밝히는 학문으로 청대에 일어난 학풍이다. 이러한 고증학의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태도는, 성리학적 혹은 의리론적 해석태도를 벗어난 새로운 기풍이었다. 그러나 고증학을 위한 방대한 문헌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며 ,그보다 더 절박한 것은 현실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고증학적 방법은 실학파에게 우리자신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문헌에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데 자극을 주었고, 국학연구의 업적을 가능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