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제국의 테마제도 - 기원문제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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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I. 머리말
II. 테마제도의 기원
III. 테마들
IV. 맺음말

I. 머리말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의 개혁은 전혀 다른 두 개의 군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하나는 리미타네이(limitanei)로서 그 지역(현장)에서 징집된 리미타네이는 영원한 방어를 보장하는 국경선 군대였다. 다른 하나는 코미타투스(comitatus)인데 황실 호위(엘리트는 황실 근위대(palatini)로 구성)의 연장으로서의 기동부대인 코미타투스는 콘스탄티노플이나 이웃 속주에 주둔하면서 친위병(praetorianus)을 대신하게 되었다. 원정을 목적으로 하는 코미타투스의 병력은 많지 않았으나 훌륭한 장교들이 많았으며 방어만큼 공격적인 훈련을 받았다1). 비잔틴 시대 초기에는 이들 외에도 부켈라리이(bucellarii)라는 사병이 있었는데 이 부켈라리이는 합법적인 임시 고용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또 다른 계층의 군인들로서 대단히 중요했다. 이들은 군대의 수장 혹은 부분적으로 이집트에서 볼 수 있듯이 대토지 소유자에게 봉사하였다2).
국경의 방어는 군사복무의 조건으로 세금이 면제된 토지를 양도 받고 제2의 군대를 형성한 리미타네이, 리파리엔세스(riparienses : 다뉴브 강변에 주둔했던 군인들)가 항상 수행했다. 펜타폴리스(Pentapolis)와 관련된 아나스타시우스의 칙령과 벨리사리우스에게 보낸 유스티니아누스의 칙서(勅書)는 리미타네이가 빈번한 군사훈련을 수행하였던 카스텔라(castella : 요새화된 성)에서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토양 경작을 강요당하였을 뿐 아니라 국경선(limes)를 떠나지도 못하고 토지에 묶여있거나 속주 장군(duc)의 모든 요구에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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