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여자는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책이 나온다면 잘 팔릴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보면 적어도 남자들이 살 것 같지는 않다. 굳이 책에서 알려주지 않더라도 여자의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할 남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처럼 여성들이 주 독자층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주 독자층이 여성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리뷰를 올린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 남 인숙이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해 여성의 눈에 비치는 남자의 한심한(?) 모습을 이야기한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여성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한국 여성들의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저자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상당 부분 수긍이 가지만, 한 쪽 측면만 강조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남자들 입장에서 보면 반박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보인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책의 내용에 대한 가벼운 반박이 될 듯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여자가 여자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 자연스럽듯, 남자 또한 남자들의 입장을 먼저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남자를 이해하는 단 하나의 코드로 ‘남자다움’을 이야기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사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사회·문화적 영향에 의해서도 남녀 간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물론 요즘은 남자가 점점 여성화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 남자다움이 지나치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데 있다. 아무튼 생물학적 차이에 의한 남자다움의 발현은 어쩔 수 없지만, 사회·문화적 영향으로 생긴 남자다움은 남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모든 어머니에게서 상대적으로 남자아이의 감정 표출과 연약함을 허용하지 않은 태도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 억울함을 증명한다. 즉, 남성스러움을 키운 것도 일정 부분 여자인 어머니의 교육의 결과다. 따라서 남자다움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 중용의 길도 함께 가르쳐야 남자다움의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여성의 여성다움의 추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