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sex)'가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것이라면 ‘젠더(gender)’는 사회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성차를 파악하는 개념이다. 성차는 그저 남녀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 자체가 차별은 아니라고 하지만, 예를 들어 남성성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이며 여성성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것이라는 인식과 개념 속에는 이미 차별이 내장되어 있다. 더군다나 기혼 여성이 우선적으로 해고당하고 성폭력 피해여성이 신고를 하면 재판 중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하게 되며 성매매 여성이 범죄자 취급을 받고 강간을 당해도 “그럴 만한 짓을 했겠지.”라며 오히려 손가락질 받는 상황들은 이미 차이를 넘어 차별과 억압의 메커니즘이다. 비록 최근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많은 성차별이 여전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머니의 존재가 생후 18개월까지의 유아 성장에 필수라고 하거나, 출산이야말로 여성의 가장 큰 임무라고 하는 것은 사회문화적인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은폐하려는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가 성별간의 자연적 차이를 앞세우는 주장을 반증한다. 인류학자 미드(M. Mead, 1988)는 뉴기니에 있는 아라페쉬족, 문머거더족, 첨불리족을 연구하여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아라페쉬족은 남녀 모두 ‘여성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남녀가 함께 자녀를 돌보며 자녀에게 관대한 편이다. 성격은 전반적으로 온화하고 친절하며 가정적이고 따뜻하다. 반면, 문머거더족은 남녀 모두 ‘남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 남녀 모두 자녀교육에 무관심한 편이며 자녀를 엄하게 다룬다. 성격은 공격적이며 거칠다. 첨불리족은 남자가 ‘여성적인’ 특징을, 여자가 ‘남성적인’ 특징을 보인다. 어머니는 젖을 주는 일 외에는 자녀와 거의 접촉하지 않고 돌 지난 후부터 아버지가 아이를 키운다. 여성은 공격적이고 지배적이며 활발한 반면, 남성은 겁이 많고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