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죄를 묻는 일차재판에서 나온 표는 유죄 280표, 무죄 220표였다. 220명은 소크라테스가 죄가 없다고 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형량을 결정하는 이차재판에서는 사형 360표, 벌금 140표가 나왔다. 일차에서 유죄표를 던졌다가 이차에서 사형 반대표를 던진 사람들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일차에서 무죄표를 던진 사람들 중에 무려 80명이 사형 찬성표로 돌아선 것이다. 아테네 사법제도가 얼마나 모순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실례다. 이 80명은 마치 소크라테스에게 죄는 없지만 사형에는 처해야 한다고 결정한 사람들이다. 일차재판에서 내린 무죄를 고수했다면 이차재판에서 이들은 당연히 피고의 결정을 따라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죄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에 대해 개인적인 괘씸죄를 적용했거나 주변인들이 선동하는 대세에 휩쓸려버렸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법제도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소크라테스는 억울함을 탄원하거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올바른 제도가 올바른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올바르지 못한 제도만이 올바른 사람을 죽이는 법이다. 그랬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아테네인들이여, 이 짧은 시간으로 인해 여러분은 이 나라에 대해 나쁘게 말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혜로운 사람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오명을 얻고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패소한 것은 부족함에서 기인했어도 말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고, 여러분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남들처럼 변명을 하고서 사느니보다는 할 말을 하고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아마 이렇게 되게끔 정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된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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