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썰매라하여 신발 또는 수렵용(원시시대부터 설상의 수렵으로)으로서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문헌상에 남아 있는 것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강원도, 함경도 등지에는 설상교통용 혹은 수렵용으로 집집마다 남자가 사용하고 있었다고 전해내려오며, 옛말에 “깊고 험한 산의 호랑이도 썰매꾼들을 보면 운다”는 속담도 있다고 한다. 조선조 숙종(재위 1675~1720)때의 대학자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에도 “함경도 산수갑산에서는 겨울에 썰매를 타고 곰괌 호랑이를 찔러 잡는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1930년대 우리나라의 썰매는 그 길이가 짧고 폭이 다소 넓고(1m*16cm), 바인딩은 짐승의 가죽 혹은 삼껍질 등으로 썰매 중간에 구멍을 4곳으로 뚫어 신발에 매어 신었으며, 약 2m정도의 나무막대기(창) 하나로 타는데, 탈 때 막대기를 설면에 대고 체중을 뒤로 주게 되면 제동과 회전역할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우거진 나무사이로 타고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고대부터 썰매가 있었다는데, 이 썰매는 함경남도 명천에서 2~3천년 전의 석기시대 유물이 발굴되어 일본 신갈상월시(新渴上越市) 종합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름은 변모되었다고 보나 지금까지 썰매라하여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