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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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불교건축은 장기간의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선진 불교문화를 수입하여 자기화하는 한편, 이를 다시 일본에 전달하는 등 동아시아 불교문화교류의 교량적인 역할을 해 왔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삼국시대에는 신라, 고구려 백제 모두가 불교를 국교로 삼아 호국적인 색채를 띠면서 경쟁적으로 사원의 건립을 추진함으로서 불교문화가 융성하였으며 남북조 시대에는 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삼국시대 못지않게 불교문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였다. 뒤를 이은 고려시대는 왕실과 귀족들의 보호를 받으며 불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이 시기의 불교문화는 한국 역사상 최고조에 달했다. 이어서 등장한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국가통치의 이념으로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불교에 대한 각종 규제와 핍박을 가하였지만 불교문화는 맥은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억압의 결과로 불교의 대중화를 이룩할 수 있었으며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토속적인 색채가 농후한 독자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삼국시대의 불교사원
2)통일신라 시대의 불교사원
6) 고려시대의 불교사원
7) 조선시대의 불교사원
조선시대에 들어 불교사찰은 조선사회가 유교를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채택함에 따라 정책적으로 크게 제약을 받았다. 불교 종파는 통합을 당하였고, 승려의 사회적 신분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사찰의 재정적 기반은 크게 위축되었다. 더구나 승려들은 도성 출입이 제한되었고, 많은 승려들은 각종 노역을 담당하여야 했다. 따라서 이전까지 도시의 주요 경관을 이루던 불교사원은 그 수가 크게 줄어들어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바뀌어갔다. 반면, 산간에 위치한 사찰들은 제한된 여건 아래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일반 서민층의 불교에 대한 신앙이 더 확산되고, 또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에 힘입어 불교사원은 17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17세기 후반을 거쳐 18세기 전반기에 들어서면서 불교사원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전각을 복구하면서 새로운 가람구성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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