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과 2차 포에니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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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과 2차 포에니전쟁
한니발과 2차 포에니전쟁

1차 포에니 전쟁/ 전쟁 한니발 출생 후의 카르타고와 시대 상황/ 한니발의 등장과 2차 포에니 전쟁의 발발 / 2차 포에니 전쟁 - 알프스 넘어 이탈리아까지/2차 포에니 전쟁 - 전쟁의 전개 /2차 포에니 전쟁-스키피오의 등장/2차 포에니 전쟁에 대한 평가 /한니발과 스키피오 비교

1차 포에니 전쟁

1차 포에니(페니키아 인과의 싸움) 전쟁은 시라쿠사의 메시나 침입이 발단이 되었다. 이제 막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로마와 이미 지중해의 해운 강국이었던 카르타고는 대외 팽창을 위해서 언젠간 만나야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 로마가 카르타고와 싸우기를 택한 것은 너무 무모했다. 시라쿠사와 메시나 모두는 시칠리아 섬이라는 곳에 있는 도시 국가였는데, 이 섬은 카르타고와 로마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다. 양국 모두 이 섬을 적의 수중에 놓이게 된다면, 바로 코 앞에 적군을 둔다는 것을 의미했다.

흔히 전쟁은 전쟁 장소를 제공하는 곳의 피해가 더욱 큰 법이다. 당시 메시나는 시라쿠사의 침락으로 로마가 도와주지 않는 다면 카르타고에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로마는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도와주기로 결정하고 시칠리아 섬으로 병력을 파견하기로 한다. 이 것이 23년간 계속된 포에니 전쟁의 발단이다. 농경민족이었던 로마가 바다를 무대로 한 시칠리아 섬에서 이미 해운강국로의 이름을 날려온 카르타고와 싸우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그리나 로마는 예상외로 해군력에서 카르타고를 압도하며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는 무리하게 아프리카 원정을 강행하다가 참패를 하고, 2번의 폭풍우로 인해 많은 손실을 입었다. 그리고 뒤에는 하밀카르(훗날한니발의 아버지)라는 젊고 유능한 장수까지 파견했지만 결국 승리는 로마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강화 조약에서 시칠리아 섬에 대한 영유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이 의미는 카르타고가 지중해 서쪽바다에 대한 제해권을 잃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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