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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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
동서문명의 십자로 이스탄불

이스탄불이 동양에 속하는가, 서양에 속하는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곳은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로마 로 선택한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며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수도로 군림하였고 15세기부터는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가 되어 20세기 초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였다.

로마는 서쪽에서부터 동진해 왔고, 오스만 투르크인들은 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왔으니, 이 곳은 오랫동안 동서양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교류하며 융합한, 문명의 십자로였다.

그런 만큼 이스탄불에서는 동과 서의 만남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 볼수 있다. 그중 하나가 정교회 소속 교회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호라사원(투르크 어로는 까리에 자미)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와 중재자 마리아 라는 제목의 성화 모자이크이다.

건물로 들어서면 입구 쪽 복도의 벽화에서 그리스도와 슬픈 표정의 성모가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그 발치에는 동로마 황실 구성원 두 명의간구하는 모습이 자그마하게 그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끄는것은 그리스도의 오른쪽 발치에 몽골 귀부인 수녀 멜라네 라는 글귀와 함께 그려져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오랫동안 지중해 문명권의 중심 역할을 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동로마 제국은 사방에서 공격을 받으며 쇠락의 길로 빠져 들었다. 13세기 중반에는 몽골인들이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하였다.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동로마 황제들이 동원한 방법의 하나가 혼인정책이었고, 황제의딸들이 일 한국이나 금장 한국의 칸 혹은 실질적 지배자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미하일 팔라이올로고스 황제의 딸이었던 마리아는 일 한국의 칸인 아바가에게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은 후 친정으로 돌아와 몽골인들의 성 마리아교회 를 건립하였는데, 이 모자이크에서 맑고도 간절한 표정으로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비는 여인은 바로 이 마리아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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