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_전연(前燕)의_관계에_대한_고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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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전연(前燕)의 관계에 대한 고찰

차례

Ⅰ.머리말
Ⅱ. 봉상왕(烽上王)대 모용(慕容)과의 관계
Ⅲ. 미천왕(美川王)대 모용과의 관계
Ⅳ. 고국원왕(故國原王)대 전연과의 관계
1. 모용황(慕容皝)의 즉위와 고구려의 대응
2. 전연의 침입과 고구려의 시련
Ⅴ.맺음말

Ⅰ.머리말

중국 역사상 북중국은 이민족지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는 여러 북방 유목민족들이 흥망을 거듭했다. 서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고구려가 이들과 접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1세기 후반 북흉노를 대파하고 막북(漠北)의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선비(鮮卑)족1)은 원래 동호(東胡)의한 지파2)로서, 후한 환제(桓帝, 147~167) 때 모용부(慕容部)가 등장3)하여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나중에 ‘연(燕)’이라는 국가를 세운다. 일반적으로 370년 전진(前秦)에 의해 망할 때까지 존속한 ‘연’을 전연(前燕)이라고 부르는데, 본고에서는 삼국사기의 기사를 중심으로 모용세력과 고구려의 관계를 살펴 보고, 이를 통해 당시 고구려의 대외관계의 성격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봉상왕대 모용과의 관계

고구려와 모용과의 접촉은 문헌상 3세기 중반 관구검의 고구려 원정 때4)로 확인되나 본격적인 접촉은 3세기 말 모용외(慕容廆)의 집권시기에 이루어진다. 289년 청산(靑山, 요령성 의현 동쪽5))으로 중심지를 옮긴6) 모용외는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던 고구려에 먼저 공세의 입장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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