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시 유기나가(1558~1600)는 오오사가 옆에 있는 무역도시 사가이 출신으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약품무역을 하는 거상의 아들이었는데, 당시 조선산 인삼과 약품을 포함한 조선 무역을 독점하고 있는 대마도 도주 요시도시가 그의 사위였다.
풍신수길의 부하가 되어 일본 통일전쟁 때 군수물자의 보급업무를 잘 수행하여 두터운 신임을 받고, 우도에 있는 우도성의 성주가 되었다.
풍신수길이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사위 소오 요시도시와 풍신수길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이시다 미쓰나리 등과 협력하여 전쟁을 방지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허사가 되고, 결국 전쟁은 터지고 말았다.
일설에는 사위와 같이 조선을 여러번 다녀와서 조선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풍신수길을 사주하여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가 여러번 그러한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기록은 없는 것 같다.
임진왜란때는 제 1군의 장수로 18,700명의 지휘관이 되어 참전하였다. 이때 풍신수길은 휘하 영주들을 견제시키기 위하여 유기나가에게 가토 기요마사와 공동 선봉장이 되어 추첨을 하여 1일 교대로 전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592년 4월 14일 첨사 정발이 사수한 부산진성과 첨사 윤흥신의 결사 수비한 다대포진성을 함락시켰다. 다음날인 4월 15일에는 동래부사 송상현이 결사 항전한 동래성을 공격하기 전에 싸우지 않고 이기고자라는 나무판자를 성 앞에 세우니, 송상현이 [싸워서 죽기는 쉽다.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라고 쓴 나무판자 대답을 해서 공방전이 시작되어 함락시켰다.
계속 북상하여 충주에서 공동 선봉장인 가토는 좌로, 고니시는 우로 각각 다른 다른 길로 진격하여 한성 입성의 다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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