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와 문화(대영제국의 성립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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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와 문화(대영제국의 성립과 발전)
영국의 역사와 문화(대영제국의 성립과 발전)

■ 대영 제국의 기초

1. 하노버 왕조의 시작 - 조지 1세(1714~27), 조지 2세(1727~60) -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이미 존재했던 왕위 계승률에 의해 하노버 선거후였던 조지가 조지 1세(1714-1727)로 등극했다. 사실 조지 1세는 계통적으로만 잉글랜드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았을 뿐이지 독일에서 성장한 독일어만 쓸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통치할 때 그를 대신해서 성심껏 정치를 해줄 인물이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하에 내각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내각은 아직 수상 스스로가 책임지는 책임 내각제가 아닌 국왕의 책임하에 수상이 정치를 대리하는 역할만 했다.

앤 여왕이 서거하고 조지가 즉위하던 사이에 망명 중에 있던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3세의 복귀를 지지하던 토리당의 볼링블록(Bolingbroke)과 옥스퍼드 백작은 막상 조지가 즉위하자 휘그당의 득세로 인해 전자는 망명하게 되었고 후자는 2년간 런던탑에 감금당했다. 이로써 명실공히 왕의 간섭도 받지 않는 휘그당의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다.

영국(이제부터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그리고 일부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의 정치권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에 잉글랜드란 호칭에서 ‘영국’이란 호칭으로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임)의 역사상 초대 수상이라고 할수 있는 월폴은 20여년간 조지 1세와 조지 2세 두 왕을 모시면서 수상의 위치는 어떤 것인가를 정립시켜 놓았다. 그는 외교 문제를 처남인 타운센트 경에게 맡기고 자신은 국내 문제에만 주력했는데, 다행히 외교적으로 평화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그의 국내 통치가 한층 돋보였다. 그는, 첫째 조세를 감면하고, 둘째 성공회와 토리당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고, 셋째 당쟁 때문에 일어났던 과거의 잔인한 모습들을 배격하면서 국내 정치를 펼쳐 나갔다. 덕분에 조지 1세 시절이 평화롭게 안착되면서 하노버 왕조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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