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라는 말이 있다.
불과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아래 세계는 항상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한국 또한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요즘 같은 평화 회담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외교 정책을 기치로 미․소 양극체제는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로 바뀌었고 서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르바초프의 외교노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진출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고르바초프의 남방정책은 한국의 북방정책과 만나 마침내 한․소 수교가 맺어지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남북 정상 회담’ 역시 과거의 세계평화를 향한 끊임없는 이러한 노력들이 바탕이 되어 맺은 결실일 것이다.
고르바초프 시대의 외교정책의 변화와 한반도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 이것이 한․소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본론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54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소련의 지도자로 등장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대내 정책의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재개편(Perestroika)과 개방 (Glasnost)을 시도. 추진하였다. 또한 대내 개혁의 대외여건 조성을 위하여 국제 정치 무대에서는 신사고(New Thinking)를 기초로 한 적극적인 상호 의존적 평화공존 정책을 추진하여 세계 정치의 신 데탕트를 주동하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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