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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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성품
16세기 말엽에 있었던 임진왜란은 동양의 3국(한국, 중국, 일본)에 모두 피해가 컸던 국제전쟁이었으며, 우리에게 있어서는 대표적인 국난 극복사였다. 왜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인구의 격감, 토지 황폐등으로 국가 재정이 궁핍해졌으며, 호적 대장과 노비문서의 소설로 신분의 동요가 있었으며, 경복궁과 불국사가 병화를 당했으며, 전주의 사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고가 소실되는 등 문화재에도 큰 손실이 있었다. 중국에서는 조선과 명이 전쟁에 지친틈을 계기로 북방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청을 건국하고 명을 공략하였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제요시가 사망하고 노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관을 잡고 에도 막부를 열었다.
우리들은 이같은 ‘임진왜란’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대테로 이순신 장군을 연상하게 된다. 그것은 곳 그만큼 임진왜란 때에 남쪽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칠 역할이 매우 컸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국란을 한몸으로 떠받쳐 나라와 겨레를 건져난 위인이며, 세계적인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가운데서도 더 돋보이는 것은 그가 쓴 전생중의 일들을 일기로 남겼는데 정조 19년에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에 ‘난중일기’가 편집되었음에 그 고전적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진중생활 중에 휘하에 참모가 쓴 보고서를 몸소 수장한 것이 남아 있어 당시의 전시적 상황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본인은 ‘난중일기’는 개이적인 글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전사적 상황을 설명해 놓은 객관적인 자료이기 때문에 ‘난중일기’를 통하여 충무공 이순신의 성격 등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비록 두서없는 글이지만, ‘난중일기’를 통하여 본인이 느낀 충무공 이순싱에 대하여 몇자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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