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책을 펼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검은 꽃이 역사소설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멕시코 이주 노동자인 ‘애니깽’ 에 관한 이야기라니.. 딱딱하고 암울한 보통의 역사소설이 내머릿속을 스쳤다.
이런 걱정 속에서 검은 꽃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작품은 기울어지는 대한제국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에 돌입했던 즈음인 1905년 4월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영국 기선 일포드 호는 조선인 1033명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발, 교민 한명 없는 맥시코로 향한다.
일포드 호에는 네덜란드계 선장과 독일인 선원들, 일본인 요리사들과 1033명의 조선인들이 타고 있었다. 게다가 조선인들은 모두 신분이 다양했다. 이름도 없이 보부상에게 끌려 다니다 도망쳐 나온 고아 김이정, 러일전쟁이 터지자마자 군복을 벗은 신식군인 조장윤, 왕조의 멸망에 통한의 눈물을 삼키는 고종황제의 사촌 이종도와 그의 가족, 이들은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조선 땅에서라면 그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 외에도 일포드 호에는 주교의 명을 받고 마야인 교화에 나서는 박광수 바오로 신부, 그를 도둑질 하는 최선길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이 작품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처음 나오는 김이정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가, 중반으로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여기엔 주인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모두가 주인공인 것이다. 이정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박광수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 조금 복잡하게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한참 빠져서 읽고 있노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새로 등장한 그 사람이 전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해내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신분에 따른 다양한 인물 개개인의 개성과 인생을 드러냈던 것이 이 소설을 손에서 뗄 수 없도록 하는 끈끈한 요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