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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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부지의 철학
王夫之와 그 史論

⑴王夫之에 대한 약술

왕부지(1619-1692)는 자가 而農이고 호는 姜齋이다. 그는 晩年을 형양 曲蘭의 石船山에서 은거하였다. 그리고 그 스스로 船山遺老라고 칭하였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는 분위기가 매우 농후한 지주가정의 출신이다. 그의 부친과 형제는 모두 학문을 닦았고 학문은 각각 전문분야가 있었다. 그는 어릴때 부터 경서와 시문을 읽었다. 또한 사학을 연구하였고 제자백가를 함께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경사자집 四部중에서 중요한 서적은 기본적으로 읽었다. 그의 아들인 왕어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또한 책속의 지식과 실제상황의 상호검증에 주의하였다. 왕부지는 청년시절부터 時事에 관심을 갖었다. 20세 때에 광붕승 등이 조직한 行社에 참가하여 조정을 의논하였다. 후에 관사 등과 함께 匡社를 조직하였으며 시폐를 바로잡아 나라를 구하려고 하였다. 1648년 淸兵이 남하하자 왕부지는 관사구와 형산에서 거병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리고 대학사 구식려의 추천으로 계왕의 정부에서 行人司行이 되었다. 그러나 정권 내부의 여러 모순들로 인하여 대관료인 왕화징과 모순이 발생하였으나 충정영의 통수인 고필정의 도움으로 화를 면하였다. 그리고 戰局形勢의 악화로 임천을 떠나 멀리 피하여 은둔하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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