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보니 아침이 아니었다. 시험은 다 끝났고 어제는 새벽 4시 넘어서 잠이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오랜만에 오후부터 하루를 시작하게된 것이었다. 고궁이나 절이라...... 고궁은 싫었다. 이런 주말에 데이트 코스로 덕수궁 돌담길이나 창경궁을 점령할 많은 커플들을 생각하고는 절로 가기로 했다. 학교 바로 앞에 절이 있기는 한데...... 학교는 너무도 멀었다. 식구들에게는 점심이고 나에게는 아침인 수제비를 먹고는 봉은사로 향하기로 했다. 아무 것도 안 가진 채 옷만 대충 입고 집을 나섰다. 태양이 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평화로웠다. 그제까지만 해도 기분이 매우 안 좋았었는데, 어제 고등학교 때의 친구와 만나서 오랜만에 이것저것을 얘기하다보니 기분이 풀린 셈이었다. 좋은 기분으로 길을 걸었다.
매우 오랜만에 찾는 곳이었다. 봉은사로 향하는 길에는 연등이 쭈르륵 달려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못 생긴 연등이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하나 둘씩 변하고 있는 것이니까...... 연 등을 종이가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단 한 번에 만들어져 나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늘로 피해 다니며 바람에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흡사 빗방울이 부딪히는 양 소리를 내는 것을 즐기며 경기고등학교와 커다란 교회 건물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원래는 이 주변 일대 모두가 절의 부지였다고 한다. 조금씩 팔려나갔겠지. 그래서 학교가 들어서고, 그곳에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까지 들어서게 되었을 것이다. 절에 들어서면서 나는 아주 오래 전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1년전 재미없게 끌려간 수학여행에서 어디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절의 지붕과 그 주변의 나무에서 감흥을 얻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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