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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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건축
백제는 서울 부근에서 나라의 터를 잡았다. 溫祚集團이 남하하던 B.C 1세기 전후의 사실에 대해서는 뚜렷한 유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초기 백제의 유적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여러 견해를 정리하면 초기 백제의 유적이 자리 잡은 곳은 中浪川一帶(하북 위례성)와 夢村土城,春宮里地域 (하남 위례성, 하남시)인 것은 화실하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백제 건국초기의 유적이 보이지 않지만. 시대가 훨씬 낮추어진 可樂洞.石村洞의 古蹟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소급해서 알 수 있다.
백제의 초기 건축의 형태를 알수 있는 것의 건축의 형태가 현존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고분의 형태이다.
백제초기의 대표적인 유적인 古墳群들은 약간 높은 평지나 바로 앞에 넓은 늪지가 전개되고 있으며, 2-3면은 하천과 호수로 둘러쌓이고 배가 닿는 곳을 가깝게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축조 되었다.그러므로 백제 고분의 입지 조건은 압록강 지류인 위강유역에 집중분포되어 있는 고구려의 전통적인 墓制(積石墓)의 그것과 어느정도 상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에 현존하는 적석총이 2기에 불과하지만 고구려의 전형적인 적석총이 서울에서 발견 된다는 사실은 백제 건국집단의 출신문제는 물론 양자간의 관련을 부인할 수 없다.
석촌동의 백제 고분은 고구려초기의 무기단식적석총이 아니라, 기변길이가 30m가 되는 기단식적석총이란 점이다. 기단식 적석총이 5-6세기의 분묘 형태임을 고려할 때 그 시기를 4세기로 소급한다고 해도 석촌동의 적석총은 백제 건국시기의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가락동, 석촌동토광묘는 봉토의 길이가 15m나 되는 방일형의 분묘로서 1,2호분 모두 다장분이다. 원래 토광묘는 춘추 전국시대이후 한대에 이르는 중국의 전통적인 묘제이다. 가락동토광묘의 매장 주체는 석탄이나 점토 섞임층으로 덮으며, 분구묘조의 최종단계는 활석이나 천석으로 전통적인 토광묘와는 달라서 토축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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