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큰뜻을 품고 고국을 떠났던 운심의 그림자가 다시 조선 땅에 나타난 것은 계해년 삼 월 중순이었다. 두만강 건너에서 그리던 고국 산천을 바라 볼 때 뛰놀던 가슴은 잠시 지나가고, 노자가 없어 노동으로 걸식하면서 건너 온 두만강 건너편의 갖가지 일들 이 미래의 불안으로 싹터 왔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조국의 산천 앞에서 말못할 회의에 가득 찼다.
아, 나는 패자다. 나날이 진보하는 도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 그새에 훌륭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패자로구나…….
고국을 떠날 때의 큰 뜻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빈털털이로 나타난 고국의 땅에서 모욕과 배척의 눈총을 의식하며 그가 내린 곳은 회령이었다.
'고기 비늘같이 잇닿은 기와 지붕이며 사이 사이 우뚝 솟은 양옥이며, 거미줄 같이 늘어진 전봇줄이며 푸푸푸푸하는 자동차, 뚜 뚜하는 기차 소리며, 이전에 듣고 본 것이언만 그의 이목을 새롭게'하는 회령 시가에서 그는, '솜같이 후줄근하고 등에 붙은 점 심 못 먹은 배의 울음 소리'를 달래면서 하나 둘 켜지는 전등불 밑을 배회하였다.
객줏집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꿈 같지만 그의 호주머니 사정은 여의치가 않았다. 본정통으로 들어선 운심은, 안경 쓴 젊은 사 람의 안내를 받아서 뒤따라오는 '갓 쓴 이며, 어린애 업은 여자며, 보퉁이 지고 바가지 든 사람들'의 일단을 발견했다. 모두 간 도 아니면 더 먼 만주 벌판에서 그리던 고국을 찾아오는 귀국객들이었다. 어떤 마력에 끌리듯이 그들의 뒤를 밟아 들어선 곳은 '회령 여관'이었다.
고국의 첫날 밤을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손님들은 내내 안경 쓴 자와 함께 오던 그 사람들이었다. 여관에서 내어다 주는 저녁 상을 받은 운심이는, 밥을 먹기는 먹으면서도 밥값 치러 줄 걱정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이를 어쩌노! 밥값을 못 주면 이런 꼴이 어디 있나! 어서 내일부터 날삯이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에 밥 맛도 몰랐다.
3 1운동이 일어나던 해 봄에 운심은 고국을 떠나 서간도의 흑룡강가 청시허라는 그리 크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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