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은 경복궁 서북쪽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서울의 중심부를 뚫고 동진한 다음 답십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틀어 내려가다가는 성동구 사근동과 송정동, 성수동이 만나는 지점에서 중랑천과 합수해 한강으로 흘러든다. 성수대교와 동호대교의 어름이다. 태백시 인근에서 샘솟아 강화 북쪽의 서해로 몸을 풀기까지 5백㎞ 가까운 한강의 흐름이 대체로 서북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강의 제2지류인 청계천의 물길은 본류와는 정반대되는 행로를 밟고 있는 셈이다.
본디 이름이 청풍계천(淸風溪川)인 청계천은 그러나 일제 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교까지가 1차로 복개된 데 이어 1958년부터 시작된 여러차례의 복개로 지금은 용두동과 마장동 어름 이하를 제하고는 정작 물길을 볼 수는 없게 돼 있다. 폭 50m의 아스팔트가 덮이고 그것도 모자라 삼일 고가도로가 공중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청계천에서 맑은 개울'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짐작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전 복개되기 전의 청계천에는 제법 맑은 물이 흘렀고, 시골의 여느 개울가와 마찬가지로 아낙들은 빨래더미 속에 일신의 번뇌와 세상 근심을 함께 넣어 두들기고 비벼 빨았다. 박태원(1909~86)의 장편 <천변풍경>은 바로 이 청계천 빨래터의 광경으로부터 시작한다.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히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