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본질은 물고기를 먹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새의 본질은 진정한 새의 본질 즉 비행에 있는 것이다. 물고기를 먹는 행위는 어떤 동물이건 간에 할 수 있는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고 있는 책이 갈매기의 꿈이라고 수없이 들어왔었지만 이번 독서 감상문은 좀 더 다른 쪽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먹기’위해 사는 갈매기를 교육시켜 ‘나는 것’의 의미를 주는, 배움에 한계를 느낀 학습자에게 어떻게 동기부여 하는지를 보면서 학습자와 교수자의 관계에서 이 책을 이해하고자 했다.
교육은‘교수자’와‘학습자’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성립함으로서 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이질적인 이 두 개체의 적절한 조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점으로 대두되게 됨은 필연적이다. 즉 교수 의도를 가진 교수자와 학습 의도를 가진 학습자와의 만남에서 교육은 그 시발점을 갖게 될 것이다. 조나단 리빙스턴이 다른 갈매기 무리를 만나면서 배움에 있어 진보하게 된 것처럼 교육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요소 즉 교수자와 학습자 가운데 최소한 어느 한 쪽의 교육적 의도와 활동이 있어야 한다. 가르침에 뜻을 가진 교수자와 배움의 뜻을 가진 학습자가 한 때 한 곳에서 만나 가르침과 배움을 진지하게 나눈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육의 개념이 가장 충실하게 실현되는 교육적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가르침에 뜻을 가진 교수자와 배움에 뜻이 없는 사람과 만나 뭔가를 가르치려 하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학습 동기를 유발하지 않고서는 교육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경우는 역행의 경우 다시 말해 배움의 뜻을 가진 사람과 가르침의 의지가 없는 교수자와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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