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청백리를 찾아서_다산 정약용

1. 역사 속의 청백리를 찾아서_다산 정약.hwp
2. 역사 속의 청백리를 찾아서_다산 정약.pdf
역사 속의 청백리를 찾아서_다산 정약용
[청렴기행]역사 속의 청백리를 찾아서[다산 정약용]

재물은 베풀어버리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게 없다”

다산 정약용

글·사진 진우석 르포·인터뷰작가 mtswamp@naver.com

1816년 6월 초, 강진 다산초당에 기거하던 다산 정약용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둘째 형님 정약전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슬프도다! 어지신 분께서 이처럼 세상을 곤궁하게 떠나시다니…. 외롭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다만 손암(정약전) 선생만이 나의 지기가 되었는데 이제는 그분마저 잃고 말았구나. 지금부터는 학문을 연구해서 비록 얻어진 것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 상의를 해보겠느냐.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경서에 관한 240책의 내 저서를 새로 장정하여 책상 위에 보관해 놓았는데 이제 나는 불사르지 않을 수 없겠구나.
_ 둘째 형님을 회상하며

둘째 형님의 부음은 정약용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다산은 한편의 책이 완성되면 줄곧 흑산도로 보냈다. 그러면 정약전은 그 책을 읽어보고 적정한 평을 해주었다. 한번은 “네가 이런 정도에까지 도달한 것은 너 스스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오호라! 도(道)가 잃어버린 지천 년에 백 가지로 가리워서 덮여 있었는데 헤쳐내고 분해해내서 그 가리워 있음을 확 열어 젖혔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년후, 18년 동안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정약용은 고향인 마현 마을로 돌아왔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미완의 저작들을 정리하며 고요한 말년을 보냈다. 그리고 1836년 다산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다산, 마르지 않는 지식의 샘물
마현 마을은 팔당호가 자리 잡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안쪽의 호젓한 강변 마을이다.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 있는 여행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폭발적으로 일어난 정약용 재평가와 더불어 다산 마을로 불리고 있다.

....
출처: 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