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하(趙明河) 선생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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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조명하(趙明河) 선생
1905. 5. 11~1928. 10. 10

․1926. 9월 침략원흉 등 주살목적으로 도일
․1928. 5월 대만 대중에게 일본 육군대장 구이궁 자격(刺擊)
․1928.10월 대북 형무소에서 순국
․1963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혈혈단신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1928년 5월 14일 대만 대중(臺中)에게 일왕족인 육군대장 구이궁(久邇宮)을 자격(刺擊)하여 6개월 후 숨지게 하였다. 경술국치후 최대 의거라 할수 있다.

황해 松禾에서 출생

『나는 대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조국광복을 못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1928년 약관 24세의 나이에 대만에서 일본의 왕족을 쓰러뜨린 조명 하의사, 조의사는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까지 조국광복의 염원을 소리높여 외쳤다.
1905년 5월 11일 황해도 송화(松禾)군 하리면 장천리에서 본관이 함안(咸安)인부 조용우(趙鏞禹)씨와 모 배장연(裵長年) 여사 사이에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선생은 일찍이 총명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일제에 탄압받단 민족의 쓰라림에 눈을 떴다. 조의사는 1926년 3월 신천군청의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하면서 같은 황해도 출신의 김구 선생과 노백린 선생 등 독립운동 선각자들의 무용담을 전해듣고 애국남아(愛國男兒)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적을 알아야…… 22세때 妻子 등지고 일본을 거쳐 대만으로 가다

그무렵 아들 혁래(赫來)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 하던 부인 오금전(吳金全)씨를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가던길에 조의사는 갑자기 어머니에게 『큰 볼일이 있어 멀리 떠나야겠습니다』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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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