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주(尹世胄) 열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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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입니다.

윤세주(尹世冑) 열사
1901. 6. 24~1942. 6. 2

․1919. 11월 조선의열단 조직(중국 길림)
․1938. 10월 조선의용대 창립(중국 한구)
․1942. 6월 중국 태행산에서 일군과 대격전 후 전사
․1982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조선의열단(朝鮮義烈團)」창설에 참가하고, 무장항일투쟁을 위해 활동하였으며 조선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태행산(太行山) 근거지에 도착, 1942년 5월 일군 40만명과 결전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매우 영특한 성격에 의협심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

윤세주 선생은 1901년 6월 24일 경남 밀양군 부북면 감천리에서 부친 윤희규(尹熺奎) 선생과 모친 김경이(金卿伊)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품은 겸손했으나 일본 식민지통치에 대해서는 온 생애를 통해서 저주 할만큼 애국심이 깊었다.
열사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기도 하고 국민학교때 일왕(日王)출생 기념일에 받은 일장기를 변소에 버릴만큼 일본을 증오했다.

동화중학교 교장에 감화받아 연무단을 조직하다

선생은 밀양의 사립 동화(同和) 중학에 입학하면서 항일 인사였던 김홍표(金鴻杓) 교장의 영향을 받아 항일정신을 키워갔다.
선생은 김교장의 애국사상에 감화되어 학교내에 비밀결사인 연무단(練武團)을 조직했다.
연무단은 당시 금지됐던 개천절 기념행사를 갖고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동화중학은 폐쇄됐다. 그러나 선생의 가슴에 반일․배일 사상은 영원히 남게되었다.

서울 萬歲運動 참가후 고향으로 내려가 독립선언서 낭독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그는 만세운동을 확산 시키기 위해 고향에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했다.
13일 하오 1시쯤 수천명이 모인 고향장터에서 선생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동지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를 그냥 둘리 없는 일제의 당장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일본경찰의 수배를 피해 그는 중국 동삼성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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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자료, 정부자료
출처: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