翰西 남궁 억(南宮檍)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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翰西 남궁 억(南宮檍) 선생
翰西 남궁 억(南宮檍) 선생
1863. 12. 27(음)~1939. 4. 5

․1896. 독립협회 창립
․1907. 대한협회 창립, 회장역임
․1912. 배화학당 교사 및 상동청년원장
․1933. 비밀결사 「십자가당」을 조직, 옥고치룸
․1977.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1907년 4월 20일 종로 YMCA 강당에서 행한 生存競爭이라는 제하의 연설문 속에서 -

통역관 양성소인 동문학에 입학하여 서구문명과 개화사상에 눈을 뜨다

1963년 12월 27일(음) 서울 정동(貞洞) 왜송골(倭松)에서 철종대 중추부 도사(都事)를 지낸 부친 남궁영(南宮永)과 모친 덕수(德水) 이씨 사이에 태어났다.
본관은 함열(咸悅), 이름은 억(檍), 자는 치만(致萬), 호는 한서(翰西)이다. 부친을 일찍 여위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선생은 1874년 한문 사숙에 입학하여 9년 동안 수학하였으며 16세가 되던해에 남원 양(南原梁)씨와 결혼하였다.
21세가 되던해(1883년) 9월 서울 정동에 있던 외아문(外衙門)즉 통일 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부속기관으로 설치된 동문학(同文學)에 입학하였다. 이 학교는 영어를 가르치는 신식학교로서 과학과 일반문화를 가르치지 않는 일종의 통역관양성소였다. 1882년 7월에 임오군란 뒤 청나라의 세력이 뻗치면서 청나라 이홍장(李鴻章)의 막객(幕客)이었던 묄렌도르프(Paul Gorge Von Mollendorff :穆麟德)가 외아문협판(外衙門協辦)겸 세관의 책임자인 총세무사로 부임하면서 외아문의 부속기관으로 동문학이 세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어전 통역관으로 관직생활을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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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료
출처: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