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지식인상 ; 피에르 아벨라르 [Pierre Abelard, 1079 ~ 1142.4.21]를 중심으로
12세기 지식인상 ; 피에르 아벨라르 [Pierre Abélard, 1079 ~ 1142.4.21]를 중심으로
목 차
I. 서론
II. 12세기 지식인의 출현
1) 지식을 판매하는 자
2) 논리적 명료성의 추구
III. 전사적 지식인
1) 전통에의 도전
2) 지적 영역의 확장
IV. 결론
I. 서 론
중세 유럽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의 하나인 12세기에는 지적 분야에서도 전통적인 수도원적 지적 체계와는 대비되는 주교좌 성당학교가 새로운 지적 기관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고대의 비그리스도교적 저작들의 유입과 활용,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의 라틴어로의 번역과 이의 적용은 이 같은 새로운 지적 토대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철학자겸 신학자 피터 아벨라르(Peter Abelard : 1079-1142)는 12세기를 대변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다. 아벨라르는 변증법이라는 방법론을 신학에 적용하고 이를 발전시킨 스콜라신학의 대변자내지 스콜라신학의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한다.1) 또한 아벨라르는 12세기 지적 혁명을 주도한 이성의 수호자 내지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한 합리주의자의 선구자로 간주되기도 하였다.2) 그리하여 19세기 합리주의자들은 합리주의의 중세적 기원을 피터 아벨라르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한편 일찍이 당대의 연대기 작가 오토 프레이징(Otto of Freising)은 아벨라르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오토에 의하면 아벨라르는 자연 철학을 다루면서 그가 신봉하던 어휘론과 유명론을 경솔하게도 신학에 혼합하는 오류를 범하였다는 것이다.3) 이 같은 부정적 견해를 반영하듯, 일부 학자들은 아벨라르의 지적 탁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신학에 대해서는 회의주의적 견해를 제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