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연애라고 한다면 보통은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결혼은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이나 오래전 정약이 되어 있었던 경우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 양반들의 결혼이나 연애 풍습은 위와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민들의 풍습은 어땠을까. 내 생각에는 양반과 별반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남녀간의 만남에 대한 유교적 규제가 조금은 약했지 않았을까 한다.
그래도 조선사회는 유교적 이념에 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과 정편에서 많이 등장한 상처들의 제가는 양반이나 평민을 떠나서 쉽사리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열녀라는 관념이 생겨나면서 이는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가서는 그러한 부분을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다. 이는 성과 정편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조한문단편집의 성과 정편에는 여성의 제가에 대한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양반집의 처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는 어쩌면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평민이나 그 이하의 하층민에 있어서는 별반 변화된 양상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즉, 엄격한 규제를 하던 양반들의 의식변화를 투영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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