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국가행사인 연등회는 성종 시기에 폐지가 되었다가 현종시기에 부활이 되게 됩니다.
현종이 연등회를 부활시킨 것과 관련하여 고려사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연등회는 성종 시기에 폐지가 되었다가 현종시기에 다시 부활이 되게 됩니다.
고려 태조의 정책
태조는 후세의 왕들에게 훈 요십조를 남겼는데요
고려의 국가행사인 연등회는 성종 시기에 폐지가 되었다가 현종시기에 부활이 되게 됩니다.
성종시기에 폐지
현종 시기에 부활
현종은 그동안 폐지되었던 연등회를 다시 부활하고 불교 국가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다지게 됩니다.
고려 태조의 정책
태조는 건국 직후부터 북방 진출을 꾀하여 북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요 고려라는 나라 이름도 옛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려의 태조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평양)을 중시하여 이곳을 북진 정책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태조는 지방세력을 포섭하기 위하여 호족과 혼인관계를 맺기도 하고, 그들에게 관직과 토지를 주거나 성씨를 내리는 등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태조는 후세의 왕들에게 훈 요십조를 남겼는데요
또 훈 요십조에서는 도선의 풍수사상에 따라 사찰을 세우고, 함부로 짓지 말 것과 우리나라와 중국은 지역과 사람의 인성이 다르므로 중국 문화를 반드시 따를 필요가 없으며, 거란은 짐승과 같은 나라이므로 그들의 의관제도는 따르지 말 것을 규정했습니다.
때문에 짐은 후세의 국왕⋅공후 ⋅후비⋅조신(朝臣)들이 각각 원당(願堂)을 핑계로 혹여 사원을 더 창건한다면 큰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