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중심의 서술을 취한 기 전체 역사서인 고려사 첫머리에는 정인지 등이 기록한 '고려사를 올리는 전(箋)'이 실려 있습니다.
고려사를 올리는 전(箋)
고려사 첫머리에는 정인지 등이 쓴 '고려사를 올리는 전(箋)'이 실려 있습니다
고려사의 세가는 다른 기 전체 역사서의 본기에 비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려사의 구성을 살펴보기로 하면 인물 중심의 서술을 취한 기 전체 역사서인 고려사는 세가(世家) 46권, 지(志) 39권, 표(表) 2권, 열전(列傳) 50권, 목록(目錄) 2권 등 총 139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물 중심의 서술을 취한 기 전체 역사서인 고려사 첫머리에는 정인지 등이 기록한 '고려사를 올리는 전(箋)'이 실려 있습니다.
조선 건국의 당위성과 함께 고려사편찬 과정 등을 서술하였습니다.
고려사 첫머리에는 정인지 등이 쓴 '고려사를 올리는 전(箋)'이 실려 있습니다
충렬왕(忠烈王)은 연회를 열며 간신무리와 어울리다가 결국 부자 간에 서로 불화를 얽었으며, 또한 충숙왕(忠肅王) 이래로부터 공민왕(恭愍王)의 치세에 이르기까지 변고가 자주 일어나 쇠미해짐이 더욱 심하였고, 위조(僞朝, 우왕)가 들어서 마침내 뿌리가 다시 오그라들어 역수(歷數)가 마침내 참 주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고려의사직은 비록 폐허가 되었지만 역사의 기록만은 사라지게 할 수 없으므로 〈태조께서 〉사관에게 명하여 붓을 잡게 하셨는데 『자치통감(資治通鑑)』과 같은 편년체(編年體)를 모본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국가의 원대 한대업을 계승하시어 큰 공렬(功烈)을 더욱 빛내시면서, 오직 정밀하고 하나 같은 마음으로 성학(聖學)이 높은 경지까지 이르셨으며, 위대한 현명함을 잘 계승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선대의 업적을 이어 현창하고 계십니다.
고려사에서는 본기(本紀)라는 말 대신에 세가(世家)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요 고려사전에서는 본기(本紀)라는 말을 피하여 세가(世家)라고 한 것은 명분(名分)의 중요함을 보이려는 까닭이었다고 했습니다.
고려사의 세가는 다른 기 전체 역사서의 본기에 비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